뇌가 말랑해지는 시간, <나는 이어도 뮤지션>

 

일요일 오전 10시. 비교적 이른 시간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연이어 들어오는 아이들의 눈빛이 반짝인다. 아이들은 본격적인 수업에 들어가기 전에 이른바 <뇌 깨우기> 시간을 가졌는데, 선생님으로부터 던져진 미션은 이름하야 <주어진 다섯 가지 숫자로 얼굴 그려내기>.

 

“오, 칠, 오, 칠, 공. 이 다섯 가지 숫자만 사용해서 얼굴을 그려볼 거예요.”

어라, 나도 숫자로 얼굴을 그려본 적은 없는데. 같이 한 번 그려볼까 하는 마음으로 취재 노트 한켠에 숫자 0을 그려올리는 순간, 저 앞에서 들려오는 선생님의 귀신같은 한 마디.

“얼굴을 숫자 0으로 그리면 너-무 재미없겠죠?” 아이들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았는지,

“아아 나 0으로 그렸는데!” 탄식 뒤로 “해도 돼요?”로 끝나는 질문이 쏟아졌다.

​

-얼굴이 네모나도 돼요?

-숫자를 뒤집어서 그려도 돼요?

-크기를 마음대로 조절해도 돼요?

-데칼코마니로 그려도 돼요?

​

꼭 허락이라도 구하는 듯한 질문 세례에 또 다른 반전의 대답을 내놓는 선생님.

“정답은 없어요! 여러분 마음대로 그리세요. 꼭 사람 얼굴일 필요도 없고요.

얼굴이라고만 했지, 그게 사람 얼굴이라고 하지는 않았잖아요?”

그런데 진짜 반전은 그로부터 5분 뒤에 일어났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갈팡질팡하던 아이들이 각자 완전히 다른 얼굴을 그려냈기 때문이다. 그것도, ‘달라도 이렇게 다를 수 있나’ 싶은 얼굴들을.

본격적인 수업이 진행되면 대체 얼마나 재밌으려나- 지켜보는 입장에서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이날은 지난 시간에 채집해 온 소리에 어울리는 가사를 붙이고, 최종적인 멜로디를 만들어 내는 날이라고 했다. 과정이 워낙 흥미로우니, 사진과 영상을 덧붙여 대략의 순서를 나열하겠다.

&#8203;1) 눈을 지그시 감고, 귀를 쫑긋 세워 “잘 듣기 위한” 준비 태세를 갖춘다.
2) 채집한 소리를 들으며 나만의 의성어로 옮겨낸다.
(샤그락, 풋차풋차풋차차 같은 센세이션한 의성어가 탄생!)
&#8203;3) 그렇게 만들어진 의성어를 사용해 짧은 문장을 지어본다.
4) 선생님의 생동감 넘치는 목소리를 빌려, 각자 만든 문장이 얼마나 맛깔나는지 감상한다.
5) 노래 가사의 주제와 내용을 정한다.
예) 산천단에 사는 고양이에게 그곳에 사는 소감을 물어보고 싶어요.
6) 고양이가 편안해 보였던 이유를 추론해 본다.
예) 기분 좋은 바람이 불어서, 잔디 향기가 좋아서, 사람들이 친절해서.
7) 위와 같은 방식으로 마인드 맵을 그려나가며 나머지 가사를 완성한다.
8) 각종 작곡 프로그램을 활용해 멜로디를 붙여본다.

9) 어떤 음을 넣어야 할지 도저히 모르겠을 때에는 제비뽑기 찬스로 계이름을 부여받는다.
10) 바이올린을 켜는 선생님에게 연주를 요청해, 듣기 좋은 멜로디인지 확인한다.
11) 열띤 토론 끝에, 마음에 쏙 드는 가사와 멜로디를 완성한다.

“자 여러분, 우리 막 했는데 음악이 돼요, 안돼요?”

- “돼요.”

“그렇죠? 뭐든지 막 하다 보면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막-! 하세요. 알겠죠오?”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아이들 입에서 가장 많이 나온 말은 “~해도 돼요?” 였고,
그래서 선생님이 가장 많이 외친 말은 “그럼요, 여러분 마음대로 하세요!” 였다.

정답 없는 수업 방식에 혼란스러워하던 것도 잠시, 아이들은 금세 옆자리 친구들과 함께

혼란의 과정을 즐기는 법을 배워나갔으며, 세상에 둘도 없는 자신만의 표현과 작품을 만들어 냈다. 격변의 세상을 살아갈 아이들이 무엇보다 익혀야 할 것은 기성세대 어른들이 쥐어주는 정답이 아닌, 바로 이런 태도이지 않을까? 그런 이유로 나는 더 많은 아이들이 <나는 이어도 뮤지션> 수업을 경험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참, 이렇게 완성된 곡은 이어지는 시간에 무려 뮤비로까지 제작된다고 하니, 바느질 기자는 제주빌레앙상블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작품이 올라오는 날을 기다렸다 흐뭇하게 감상할 예정이다. 아이들의 재미난 시도를, 이왕이면 함께 즐겨주시기를!

기사작성자 : 바느질 기자단 안이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