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주인이 되는 공간 오라, 놀이터

아이들에게 결정권을 주면 그들의 일상은 매순간 모험이 된다. 저자 김현정의 똑똑한 모험생 양육법에서 나온 말이다. 터치 한 번이면 모든 게 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디지털 시대 속에 태어난 아이들에게 일상이 모험이 될 만한 경험이 과연 얼마나 될까. 스스로 결정해 본 경험이 있는 아이들은 자라서도 근성과 용기가 있는 멋진 어른이 된다. 그리고 바로 여기, 제주에는 어른이 아닌 아이들이 결정권을 갖고 주인이 되는 공간이 있다. 줄지어 선 연립빌라와 아파트 사이로 널따란 마당이 있는 한적한 주택 한 채. 토요일 오후만 되면 아이들의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으레　주택의 두꺼운 벽돌을 뚫고 밖으로 퍼져나가는데, 과연 무엇이 아이들을 이토록 즐겁게 하는 걸까. 궁금하다면 끝까지 탐독하라.

지난 11월 초에 오라 동에 있는 공간오라에 다녀왔다. 공간 오라는 JJ문화기획단과 JFAC제주 문화 예술 재단이 주관하는 아이들의 ‘문화’ 학교다. 토요일 오후 세 시면 아이들은 이 곳에 한데 모여 다섯 시 까지 놀이를 하다 집으로 돌아간다. 놀이에 기본적인 틀은 있되 각자가 생각한 규칙을 추가하고, 놀이를 하면서 바꾸기도 한다. 공교롭게도 내가 방문한 날은 마지막 수업일 이었다. 코로나 사태로 외부인 방문이 어려워져 계속해서 가보지 못하다 마지막 날, 극적으로 취재를 나갈 수 있게 됐다. 마지막. 아이들에게 이 곳에서의 마지막은 어떤 의미일까. 부푼 기대감을 마음 한 쪽에 품고 안으로 들어섰다. 거실 벽에서 부터 지난 날 아이들이 오라 놀이터라는 공간에 할애해 온 시간 속의 즐거움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방이며 벽이며 할 것 없이 곳곳마다 아이들의 놀이의 흔적이 빠지지 않은 데 없이 빼곡했다.

선생님들은 분주하게 준비물들을 펼쳐두고 있다. 공간 오라에서의 놀이는 선생님들이 규칙을 두지 않는다. 놀이를 하며 즉각적으로 나오는 아이들 자유의사를 반영하며 하나 둘씩 규칙이 생겨 나간다. 오늘 준비물은 각종 색지와 사인펜, 색연필 등의 필기구들이었다. 마지막 수업을 친구들에게 줄 초대장을 꾸며 보는 활동을 하기로 했다고. 시작 전, 한 아이가 집에 일찍 가야하는 아쉬움을 토로하며 알게임을 하고 싶다고 했다. 선생님이 일어나 아이들에게 물었다. “오늘 지원이가 집에 일찍 가야한대. 그런데 알게임을 너무 하고 싶대요. 우리 알게임 한 번만 같이 하고 초대장 같이 만들까요?” 네! 하는 우렁찬 대답이 일제히 들려왔다. 그렇게 알게임이 시작 됐다.

알게임은 알부터 시작해 불사조가 되어가는 과정을 가위 바위 보로 이기며 헤쳐 나가야 하는 그야말로 알의 성장 과정이 담긴 게임이다. 시작은 땅에 발을 붙이지도 못한 채 쪼그려 앉아 엉덩이로 바닥을 밀고 다녀야 한다. 이것이 알이다. 같은 알 끼리 가위 바위 보를 한다. 그 다음은 두 발로 땅을 딛고 두 팔을 허공에 파닥거린다. 병아리다. 같은 병아리들 끼리 가위 바위 보를 한다. 닭이 된다. 허리 뒤와 이마에 벼슬과 꼬리처럼 손을 붙인 아이들은 또 다른 닭들과 가위 바위 보를 한다. 이긴 사람은 불사조가 되어 왕좌의 자리로 간다. 새로 불사조가 되어 날아온 아이들과 가위 바위 보를 해서 불사조의 자리를 지켜내야 한다. 불사조가 되는 데에 있어서는 아이들, 선생님 할 것 없이 모두가 진심이다. 아이들은 열을 올리고 가위 바위 보를 한다. 지면 다시 전 단계로 돌아가 볼멘소리가 나오고 불사조가 되면 신이 나서 목소리가 커진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규칙을 지켜야 즐겁게 놀이할 수 있다는 사실과, 질 수도 있고 이길 수도 있다는 사회와 불가분의 이치를 스스로 체득해 나간다.

한바탕 신나게 땀을 빼고 난 뒤 본격적인 초대장 만들기가 시작된다. "원하는 공간에서 하세요." 라는 말에 아이들은 의자 위, 탁자 위, 벽 쪽으로 각자 자리를 잡는다. 섬섬옥수 같은 손들이 종이 위를 바쁘게 지나다닌다. 다소 산만할 법도 한데 다음에 올 친구들에게 줄 초대장을 작성하느라 제법 진지하고 조용하다.

한 아이에게 다가가 물었다. 여기서 한 놀이 중 뭐가 제일 재밌었느냐고. 아이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가 제일 재밌었다고 대답했다. 또 다른 아이에게 물었다. 여기에 와서 가장 좋은 점이 무엇이냐고. 코로나 때문에 학교도 못 가고 친구들도 자주 볼 수 없는데, 여기서 친구들을 만나고 뭔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놀 수 있는 것이 너무 좋다고 했다. 학교에서 가르쳐주는 공부는 머리에 넣어야 하기에 자칫 지루하지만 오라놀이터에서의 놀이는 아이들을 스스로 깨닫게 한다. 덕분에 매 해 마다 이 곳으로 아이들을 보내려는 부모님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놀이와 공부는 다른 개념이지만 이곳에서는 그 두 가지가 한 갈래로 흐르고 있다. 초대장을 만드는 아이들은 올 한 해의 추억을 정리해 글로 남기며 내년에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다짐한다. 오라놀이터는 아이들에게 다시오고 싶은, 단 하나 뿐인 창의력 공작소이자 작은 유토피아다.

선생님들에게 궁금한 점이 많았다.

Q. 연구사업이라고 하셨는데 어떤 성과를 얻으셨나요?
A. 아이들에게 프로그램을 주는 것이냐,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냐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공간만 주어졌을 때 아이들이 어떻게 만들어 갈 수 있는지, 새로운 놀이를 만들어가는 아이들에게서 배우는 점이 많다. 우리는 틀에 갖춰져 있는 세대이기 때문에 틀에서 부터 자유로운 아이들의 의견을 적극 수용하고 있다. 어린이들 고유의 창의력에 때때로 놀란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게임을 하는데 한 아이가 갑자기 "난 상어야!"라고 외쳤다. 그 후로는 상어가 되지 않는 친구를 찾는 것이다. 이렇게 한 프로그램에서 여러 가지 놀이를 경험한다. 이 호박 바구니도 한 아이 어머니가 간식을 주셨는데 담아 갈 곳이 없어 즉석에서 만들었다. 마침 할로윈이 있는 계절이었다.

Q. 아이들에게 어떤 공간으로 기억되었으면 하나요?
A. 아이들이 왔을 때 놀이터 같은 공간, 즐거운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Q. 전 년도에 비해 달라진 점이 있다면?
A. 1년 지원을 받아서 진행되는 프로그램, 4년 차다. 전년도에 왔던 아이의 학부모들이 또 다시 신청을 해주실 만큼 인기가 괜찮다. 지난해에는 이 공간오라 뿐만 아니라 1월부터 11월 까지 야외 활동도 많이 했었다. 오름이나, 잔디밭, 학교 운동장 등을 돌며 바깥 놀이도 많이 했었는데 이번 해에는 코로나 때문에 많이 하지 못했다.

Q. 마지막 프로그램이라고 하셨는데 기분이 어떠신가요?
A. 코로나 때문에 많은 회 차를 운영하지 못해서 많이 아쉽다. 내년에도 기획 서를 내고 선정이 되어야 운영이 가능해지는데 선정 여부는 불투명하다. 아이들을 다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려고 보니 한 선생님께서 사무실 한켠에 앉아 아이들에게 줄 간식을 포장하고 있었다. 사탕, 과자 등 작은 봉지 안에 종류별로 간식이 참 많이 들어가 있었다. 원랜 간식도 많이 줬었는데 코로나로 함께 먹을 수 없어 한동안 나눠 주지 못 했다고 한다. 돌아가는 길에 드시라며 내게도 하나를 넌지시 건네주셨다. 들어 선 순간부터 나오기 까지 주 강사 선생님들과 보조강사 선생님들 모두 이렇듯 나를 아무 거리낌 없이 맞아 주셨다. 마치 경계심 없는 아이들처럼.

제 7차 교육 과정을 거쳤던 나의 세대는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나이부터 주입식 교육을 받았다. 자원이 부족한 나라인 탓에 교역 할 게 없어 인적 자원을 공장 부품 찍어내듯 만들어 댔던 과거 한국 사회의 아픈 교육 방식을 고스란히 받고 자란 것이다. 하지만 채 20년도 되지 않은 지금, 교육의 트렌드가 바뀌고 있다. 이제는 놀이 중심의 어린이집이 더욱 각광 받는다. 학부모들은 IQ보다 EQ를 더욱 열망한다. 구세대의 방식으로 사회를 살아가는 방식을 체득해 온 어른들은 지적 재산도 즐겁게 축적해 갈 수 있다는 것, 인과관계를 이해하고 타인과 어울려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성숙함을 놀이를 통해 배울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은 것이다. 오라 놀이터는 어른들의 이러한 희망 앞에 전망을 제시한다. 전년도에 왔던 아이들이 매 해마다 친구를 데리고 다시 오고자 하는 것만으로도 그 이유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오라 놀이터는, ‘웃음’이 먼저 떠오르는 곳이다. 어떤 게임이 제일 즐거웠냐는 물음에 웃음을 먼저 터뜨리던 4학년 여자 친구의 모습이 떠오른다. 아이들이 왔을 때 놀이터 같은 공간, 가장 즐거운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던 선생님의 바람은 이미 이뤄진 곳이 아닌가. 오라 놀이터라는 공간으로 인해 더욱 특별한 아이들이길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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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작성자 : 바느질 기자단 고아람